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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처세교훈(보왕삼매론)

sunog 체칠리아 2010. 5. 11. 23:30

 

불교의 처세교훈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뜻하지  않은 일로 마음고생을 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별 잘못을 한 것이 없는데 뜻밖의 암초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스스로 분노하여 자신을 괴롭힙니다. 술을 마시고 욕설을 하면서 분노를 달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술이나 욕설은 잠시는 어떨지 몰라도 아주 마음을 편하게 한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때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요. '색처반통(塞處反通)이요 구통반색(求通反塞)'이란 말이 있습니다.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데 도리어 막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도리어 좋은 일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회남자>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도 이런 교훈을 말해줍니다.

 

옛날 전국시대에 한 국경지대에 점을 잘치는 노인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기르던 말이 집을 나가더니 국경너머로 도망을 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걱정을 했으나 정작 노인은 태연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복이 되어 돌아올지 알겠는가."
노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을 집나간 말이 어느 날 어디서 좋은 말 한 마리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번에는 경사가 났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집나간 말이 돌아온 것도 경사인데 좋은 말까지 한 마리 데리고 왔으니 확실히 노인의 집은 경사가 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애써 기쁜 빛을 감추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쎄. 그것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 두고 봐야지."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이 집 아들에게서 사고가 생겼습니다. 말타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새말이 생기자 그것을 타고 들판을 달리다가 다리가 부러진 것이었습니다. 멀쩡한 젊은이가 다리가 부러져 병신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입방정을 떨었습니다. 노인의 집에 들어온 말이 재수가 없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묻어 들어온 짐승은 집에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내쫓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역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스스로 속을 끓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큰일이 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나 나라에서 고을마다 징집관을 보내 건장한 장정을 모두 군인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마을의 젊은이들도 모두 군인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병신이므로 군인으로 징집되는 것을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몇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이로 인해 군인으로 나간 이 동네 젊은이는 모두 전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마을에는 노인 몇 명만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노인은 보고 그래도 전쟁통에 자식을 잃지 않은 사람은 할아버지 이라고 부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는 듯 다시 괭이를 메고 밭으로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이 새옹지마의 고사가 유명해진 것은 원나라 때 희회기(熙晦機)라는 스님이 쓴 시 때문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人間事塞翁之馬
推枕軒中廳雨眠
세상의 인간만사란 새옹의 말과 같으니
추침헌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나 자게.

 

세상살이란 이런 것입니다. 막힌 것으로 알던 것이 통하는 것이 되고, 통하는 줄 알았던 것이 막히는 것이 되는 예는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대반열반경>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바라문이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길상녀(吉相女)라고 했습니다. 늘 좋은 일만 생기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길상녀와 결혼한 그는 아주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길상녀의 동생 흑암녀(黑暗女)가 결혼하는 날부터 따라 들어와서는 나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잠자리에까지 따라 들어와 함께 자려고 했습니다. 참다못한 바라문은 드디어 길상녀에게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그대와 결혼한 것은 그대와 행족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대의 동생 흑암녀가 따라와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한다. 그러니 어서 그대의 동생을 내보고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
그러자 길상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내 동생 흑암녀를 미워하여 쫓아내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한날 한시도 떨어져 살 수 없는 운명입니다. 만약 흑암녀가 다른 데로 가면 나도 그녀를 따라 가야 합니다. 동생도 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오도록 되어 잇습니다. 그러니 나를 사랑한다면 흑암녀도 함께 살도록 해주시고, 흑암녀를 내보내려면 나도 함께 내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 바라문은 길상녀와 흑암녀를 함께 데리고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얘기는 행복과 불행은 떨어지지 않은 형제와 같아서 낮에는 길상녀가 되었다가 밤에는 흑암녀로 변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인간은 언제까지 행복하게만 살 수도 없고 반대로 언제까지 불행하게만 살 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행복이 오면 불행도 따라오고, 불행이 오면 행복도 뒤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언제나 행복만을 바라다가 불행이 닥치면 더 크게 놀라고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이러한 인생의 현실을 언제나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그것으로 오히려 스승을 삼아야 합니다. 옛날 중국 명나라 때 묘협이라는 스님은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旨)>라는 글을 써서 불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지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원래 이 것은 꽤 긴 글인데 김대은(金大隱)스님이라는 분이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라고 번역해서 불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이 글은 억울하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읽으면 마음을 다스리는데 아주 좋은 명약이 될 것입니다. 우선 그 글부터 소개합니다.

 

첫째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심이 생기기 쉽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로써 양약(良藥)으로 삼으라 했나니라.


둘째 세상일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한 일이 없으면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성인인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나니라.


셋째,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고 건너뛰게 되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넷째, 수행하는데 마장(魔障)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장이 없으면 서원이 굳건하여 질 수 없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애로와 마군(馬軍)으로써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다섯째 일을 계획하는데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어려움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여섯째, 친구를 사귀되 내게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나만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 청렴함으로써 교제를 길게 하라 하셨느니라.

일곱째,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여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여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길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동산의 유원지와 같은 것으로 삼으라고 하셨느니라.

 

여덟째, 덕을 베풀면서 과보(果報)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계획적으로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 베푼 것을 헌신짝 같이 버리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아홉째,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탐심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만족 할 줄 알아서 부자 같이 살라 말씀하셨느니라.

 

열째, 억울함을 당할 때 굳이 밝혀서 분풀이를 하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혀서 분풀이를 하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써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곳에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오,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혀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서 도리 도를 얻으셨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을 해치려는 살인귀 앙굴마라와 제바달다 의 무리가 도리어 어기고 반역된 짓을 하였건만 우리 부처님께서는 모두 수기를 주셔서 성불하리라 하셨으니 어찌 저희 거슬리는 일이 나를 순종함이 아니며 저들이 방해하는 일들이 어찌 나를 성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리오. 요즘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에서 견디어 보지 못하면 장애에 부딪칠 때에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의 큰 보배를 잃어버리게 되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며 슬프지 아니하리오.

 

다시 이 열 가지 일을 부연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몸에 병에 없기를 바라지 말라 한 것은 이런 뜻이 잇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건강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건강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무슨 병이든지 가벼운 병이 한 두 가지는 다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전생에 지은 업보로써 이 세상 사람의 몸을 받아 나온 이상에는 업병(業病)이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무병하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폭식과 호색을 하면 병을 만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병을 무조건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랑팔십'이라고 병을 앓은 사람은 건강에 각별하게 조심하므로 더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옛날 중국에 편작이라는 명의가 있었습니다. 그의 늙은 아버지는 해수병을 앓아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약을 지어달라고 하여 먹었으나 낮지 아니 하였습니다. 어느 날, 편작이 외출하고 없는 사이에 아버지는 아들의 제자들에게 신효한 약을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선생보다 의술이 뛰어난 것을 보이기 위하여 좋은 약을 몇 첩 지어서 달여 먹게 하였더니 노인의 병이 씻은 듯 낳았습니다. 노인은 기뻐하면서 '너보다 너의 제자가 의술이 낳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편작은 다음 날 제자를 불러놓고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네가 우리 아버지의 약을 지어 드려서 고맙기는 하나, 아버지는 그 해수병이 생명의 양식이다. 아버지는 그 병 덕분에 80살까지는 사실 것인데, 네가 방정맞게 약을 지어드려서 병을 낮게 했으니 한 달이 못 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려는냐. "
과연 편작의 아버지는 한 달을 못 채우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면목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사는 이치입니다. 그러니 병이 있다고 떠나보내려고만 하지 말고 잘 데리고 사는 것도 오래 사는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둘째, 세상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이 세상은 고해라 하셨으니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사람인 이상 고생과 곤란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고생과 곤란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남의 사정을 모르고 저만 잘났다고 코가 큰척하고 사치하며 돈을 물 쓰듯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필경에는 패망하여 알거지가 되어서 쪽박을 차기가 쉬운 것입니다. 부자의 아들들은 대개 아버지의 후광으로 곤란을 겪지 않고 자랍니다. 모두 자기가 잘난 탓에 그런 줄 압니다. 그러나 유산을 물려받고 3년이 못 가서 망하는 것은 곤란을 겪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곤란을 약으로 삼아 분발하는 사람은 큰 성공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움에 처했다고 낙담만 할 일은 아닙니다.


셋째, 공부하는데 마음의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뜻은 이렇습니다. 공부는 세상 공부나 불교 공부나 항상 게을러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6년을 기한으로 공부를 한다면 어서 건너뛰고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1학년 공부를 하지 않고 6학년 공부를 하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니다. 그러니 순차에 맞게 공부해나가야지 갑갑하다고 건너뛰다보면 안패를 당하는 일이 생깁니다.


넷째, 수행하는데 마장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뜻은 이렇습니다. 옛부터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했습니다. 공부가 높으면 마가 성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무도 키가 크면 바람을 많이 받게 되어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태풍이 불면 키가 큰 나무가 부러지거나 쓰러지지 작은 나무나 풀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높게 되면 반드시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학문이 깊어지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은 반드시 몸가짐 마음가짐을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애를 물리치고 공부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장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나 굳건하게 중심을 잡아서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불도수행을 하려면 너무도 마장이 많습니다. 그러나 마장이 많아야 서원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마장이 없다면 자극이 없으므로 미적지근하여 수 10년을 수행하고 도를 닦아도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 듯 아무 진보 없이 허송세월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일을 계획하되 쉽게 되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라는 뜻은 이렇습니다. 옛말에 모사재인(謀事在人)이나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 했습니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성사여부는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이란 아무리 일을 잘 꾸며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고 실패가 많습니다. 만약 다 성공만 한다면 실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과 같이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정신을 차리면 반드시 성공의 기회는 주어집니다. 만약 실패 없이 손쉽게 일이 잘 된다면 날림으로 수십 층의 건물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을 하다보면 서울의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가 있다. 그러므로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빨리 하려고 조바심을 내지 말고 탑을 쌓아가듯이 공을 들이고 조심하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는 금자탑을 쌓을 수 있습니다.


여섯째, 친구를 사귀되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친구관게에서 늘 나에게만 이롭기를 바라면 필경에는 친구가 하나도 없게 됩니다. 나도 남에게 잘해주어야 남도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지 남만 나에게 잘하라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 주변에 친구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관포지교(管鮑之交)와 같은 친구관계도 있습니다. 관포지교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라는 책에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관중과 포숙은 제나라 사람인데 포숙은 돈을 대고 관중은 경영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관중이 이익금을 독차지하자 포숙은 관중의 집이 가난한 탓이라고 이해해주었다고 합니다. 또 함께 전쟁에 나가서는 관중이 세 번이나 도망을 쳤는데 포숙은 그를 비겁자라 생각지 않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변명해주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포숙은 관중을 끝까지 믿어주었는데 나중에 관중은 포숙을 일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자(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 즉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극히 드뭅니다. 따라서 보통 사람이게 이런 일을 바라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오히려 친한 사이일수록 친구를 손해보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친구를 생각해줘야 유무상통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로움만 취한다면 끝내는 이해만 밝히고 따지는 친구를 만나서 나중에 후회하게 되리니 이를 조심할 일입니다.


일곱째, 남이 내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은 이런 뜻이 있습니다. 즉 남을 내뜻에 따르게 하려면 개자 먼저 남의 뜻에 순종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먼저 남의 뜻을 순종해 줘야 남이 나를 따르게 되는 것이지, 나는 본척 만척 하면서 남만 따라 하라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 남이 무조건 하고 잘 따라준다면 천하에 자기가 혼자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우쭐하게 되어 결국은 패가하고 망신하게 되니 조심할 일입니다.


여덟째, 덕을 베풀면서 과보를 발라지 말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만약어떤 사람이 작은  덕을 베풀었다고 과보를 바란다면 그것은 소인배의 짓이요, 군자나 부처님의 제자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무주상보시는커녕 작은 일을 했다고 어깨를 으쓱대는 것은 불교를 믿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홉째,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이 세상의 소득은 자기 노력여하에 따라 대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노력을 하고도 많은 이익을 바라거나 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그 어리석은 탐욕으로 이해 반드시 앙화를 받게 됩니다. 세상사에 공짜란 없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공짜 너무 좋아하면 안도빈다. 공짜로 보태지는 것은 재앙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열째, 억울한 일이 있어도 굳이 밝히려하지 말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일을 당할 때마다 사람들이 명백한 진실을 가리고 재판을 하여 분풀이를 하고 보면 원한에 원한을 더하게 되어 세세생생 끊이지 않게 됩니다. 차라리 이덕보원(以德報怨) 즉 덕으로써 원수를 갚고 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뒤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원수를 원수로써 갚으면 마른풀로써 불을 끄는 것과 같고, 덕으로써 원수를 용서하면 흐르는 물로써 불을 끄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궁변통(窮變通)의 원리입니다. 궁하게되면 궁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변하게 마련이요 막히면 또 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물을 막으면 처음에는 막히는 것 같으나 다시 돌아서 내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통하게 되면 통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불자는 궁하든지 변하든지 통하든지 이 모두를 초월하여, 모든 것을 잘 견뎌서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수양이 잘 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但盡凡情
別無聖解
다만 범부노릇을 그만 두라.
성인공부가 따로 없느니라.
 
내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말을 했는데 사실은 이런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왜 자꾸 하느냐 하면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발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어리석은 일은 이제 그만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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