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 밖의 욕망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를 가나 물질의 홍수에 떠밀리고 있다. 일반 가정이나 절간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물건이 너무 흔하기 때문에 아낄 줄 모르고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옛날 같으면 좀 깁거나 때우거나 고치면 말짱할 물건도 아낌없이 내다 버린다. 물건만 버리는 게 아니라 소중하게 아는 그 정신까지도 함께 버리고 있는 것이다.
너무 흔하니까 귀한 줄 모르지만, 아무리 물건이 흔한 세상일지라도 거기에 대응하는 마음가짐이 보다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또 남보다 많이 가지고 차지하려고만 하지 그런 과욕의 마음을 스스로 억제하거나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다. 예전 사람들은, 즉 과거의 우리들은 조그만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귀하게 여기면서 넉넉한 줄을 알았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들은 많은 것을 차지하고서도 고마워할 줄도 귀하게 여길 줄도, 또한 넉넉한 줄도 모른다. 그저 늘 모자라 목이 마를 뿐이다.
좀 모자라고 아쉬운 것도 있어야 그것을 갖고자 하는 기대와 소망도 품게 되는 것이지, 그런 여백이 없으면 기대와 소망도 지닐 수 없다.
가령 어떤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이 다음에 형편이 풀리면 저걸 우리 집에 들여놓으리라, 이런 생각만으로도 표정 없이 굳어지기 쉬운 일상에 어떤 탄력을 가져올 수 있다. 허나 막상 구해다 가까이 두게 되면 며칠은 좋고 편리하고 흐뭇하지만 이내 시들해져서 '관리인' 노릇을 해줘야 한다.
적게 가질수록 마음이 덜 흩어진다. 그리고 적게 가질수록 귀하고 소중한 줄을 알게 된다. 귀하고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은 알맹이 없는 빈 꺼풀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의 욕망이란 한이 없다. 분수 밖의 욕망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롭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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