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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둑 이야기

sunog 체칠리아 2013. 11. 27. 13:12

 

 

어느 도둑 이야기


소리칠 겨를도 없었다.
재빠른 동작으로 그는 우리집에 침입을 했고,
나를 두꺼운 끈으로 묶어놓았다.
내 집에 도둑이 들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전날 밤 딸네 집에 간 아내에게
자고 오라고 말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

"
가진 돈돈 있는 대로 다 내!
안 그러면죽여 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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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젊은이로 보이는 사내는

내게 칼을 들이댔다.

소름이 돋았다.
환갑이 넘었으니 죽음을 한 번쯤
생각해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

"
내가 돈을 주면 날 죽이지 않을 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순간 도둑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푸른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왜 그리 선량해 보였는지
….


어디 가서 이렇게 말하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도둑질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
젊은이, 언제부터 이랬나?"

"
늙은이가 말이 많아.

이상한 소리 말고 돈이나 꺼내!"

그는 칼을 내 얼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들이댔다.
눈앞에 보이는 칼 뒤쪽으로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

"
나는 죽음이 안 무서워. 자식들도 다 키워놨고
내 손주도 자네 나이쯤 됐을걸
."

"
이 영감탱이빨리 돈 내놔!"

그의 목소리는 더 격양돼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

"
돈 줄게.

자네가 원하는 것을 다 줄테니 우리 타협하세."

"……."

"
도둑질이 아니라

내가 빌려주는 것이면 어떻겠나?"

그의 동공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내 말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

"
내가 잔머리 굴리는 것으로 보이나?
환갑이 넘은 내가 젊은 자네만큼 똑똑하겠나."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며 말을 다시 이었다.

"
만약 이번이 처음이라면
자네 인생에 오점을 남기면 안 되잖아
.
잡혀가지 않아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별 후회가 없지만

자네는 너무 아까워.
내가 양보할테니 빌려주는 것으로 하세."

순간 내가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마스크가 움씰움씰 움직이는 것이
그는 분명 울먹이고 있었다
.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간댕이가 부었지.
칼을 쥔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순전히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내 생각처럼 그는 선량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
에이 씨 못해 먹겠네."

그는 마스크를 벗더니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나도 목이 메여 그의 등을 다독거렸다.

"
도둑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도둑질을 하려고....
다 폼이었나? 허허허"

그는 제 손으로 묶었던 끈을 다시 풀어주었다.

"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그렇지?"
"…
제 어머니가 혈액투석 중이신데
병원비가 너무 밀려 있어서요
.

한 달 후엔 저도 결혼을 해야하는데
돈에 너무 쪼들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장롱문을 열어 깊은 곳에서

금반지와 목걸이를 꺼냈다.
그리고 손주 등록금에 보태주려고
찾아두었던 돈을 그의 무릎 앞에 내밀었다
.

"
할아버지! 이러시면…"

"
내가 약속하지 않았나. 빌려주겠다고"

"
됐습니다. 그냥 나가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붙들었다.

"
그냥 나가면 도둑이 되는 거야.

나는 도둑에게 이 돈을 빼앗긴 게 아니라
앞길 창창한 청년에게 빌려주는 것이라네
.
나중에 갚으면 되고."
그 시간, 청년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는 돈과 패물을 받아들고

내 집을 얌전히 걸어나갔다.
나는 그를 문밖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는 "성실하게 벌어 반드시 이 빚을 갚겠다"

말을 남기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사라져 갔다
.

-
월간 낮은울타리의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