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만큼 늙었을 뿐
사람이 늙는 것을 알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사람이 젊은지 늙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단 늙어간다는 것을 알게 하는 외적 증거는 생일이다. 이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이 늙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쯤해서 고백하자면 나는 50대가 아니다. 예순다섯 살이다. 즉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몇 살인지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비교할 대상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내 나이였을 때 아버지는 무엇을 하셨지? 그래 내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지? 혹은 수도원의 일흔, 여든인 노인들은 내 나이 때 어떻게 살았을까? 기억을 떠 올려보면 내 나이 때 그들은 아주 활동적이고 정정했으며 그중 일부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내가 늙었다는 사실, 그리고 기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강연을 하러 갈때 아직 혼자 운전할 수 있다. 책을 집필하는 것도 즐겁다. 가끔은 에전보다 더 일을 많이 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몸이 신호를 보내오는 것도 사실이다. 일을 마치고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피로 때문에 운전하기가 힘들고, 겨울에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도 꺼려진다. 그럴 때면 내 몸과 정신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으며 나이가 더 들면 더 제한이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장거리 운전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경우 나는 이것을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라고 내 영혼이 보내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뿐이다. 내가 노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이제부터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쉬어야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내 나이에 맞게 살고 예전처럼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차츰 내가 감당 할 수 없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 대신 내게는 연륜과 경험이 있다. 강연도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이 되어서 좋은 일도있고 나쁜 일도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살고 일하고 느끼는 것이 내 나이에 맞는지 알아내는 감각이다. 노인이라고 해서 갑자기 호호 할아버지를 흉내 낼 필요는 없다. 또한 젊은이들을 따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나이만큼 늙었다. 그뿐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내면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존재감은 변했다. 오늘의 나는 10년 전 내가 아니다. 10년 후에는 또 어떨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며 나 자신과의 관계가 조화로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진솔하고 활기찬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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