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의 일기(日記) / 혜천 김기상
이렇게 높아지고 넓혀진
티 한 점없이 맑은
갈하늘은 오늘이 처음이지 싶다
작년까지의 가을하늘도 오늘같지는 않았다
서재(書齋)의 창문을 열어젖힌다
갑자기 하늘이 움직인다
초하루 · 보름의 밀물을 탄 파도만큼이나
쎈 물살의 기세로 서재의 창틀을 넘는다
서재가 온통 하늘로 차오른다
숨이 막혀 더는 견딜 수가 없다
마침 창밖을 스치던 갈바람이 나의 귓전에 대고
" 게을러터진 탓으로
습기차고 곰팡이 슨 심신(心身)이니
이 좋은 가을 날씨 놓치지 말고
어서 거풍(擧風)을 서두르시라"고 보챈다
"맞는 말이다"
화들짝 집을 나선다
가을 햇살이 내리꽂히는 들녘으로 달린다
교외의 논배미는 고개숙인 벼이삭과 함께 황금색으로 출렁이고
집집의 텃밭 채전은 바짝 자란 김장용 배추와 무로 그득하고
산자락을 채운 적지않은 나무들은 변색(變色)을 서두르고
갈대와 억새 들은 연례(年例)의 춤사위 축제가 한창이다
상현천 · 성복천 따라 귀가하는 둔치마다
코스모스를 비롯한 갖가지 꽃들이
성장(盛裝)한 몸매를 자랑하며
나의 발목을 잡는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름난 사잔작가가 찍어낸 천연색 사진인들
세계적으로 유면한 화성(畵聖)이 그려낸 수채화인들
자연 속에 깃든 생명력까지는 손댈 수가 없으리라
우리 며느리 시집와서 처음으로
시부모님께 인사올릴 때 입었던
차림만큼이나 곱고 예쁘다
사람이 산다는 건 무엇일까 ?
갈등과 반목이 적지 많은 일상의 삶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 ?
우리들 인간에게 자연은 어떤 존재인가 ?
자연을 창조한 궁극적(窮極的)인 실체(實體)는 과연 무엇인가 ?
......등등 여전히 막막한 물음들이다
하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두 가지만은
너무도 확실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마나는 사람마다
관계지어 살아가는 사람마다
한 사람 한 사람 예외없이
서로 사랑하고 - 아끼고 - 믿고 - 의지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만났을 때
"아 ! 아무개 아니신가 ?" 하며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익혀 두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생각해보니
기쁘고, 즐겁고, 보람된 하루였다.
0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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