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關心) / 혜천 김기상
관심이란
어떤 사람 · 대상(對象) · 사물(事物) 등에
마음이 끌리어 주의(注意)를 기울이는 일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끌린다" 함은
"마음에 있다 - 마음에 든다 - 마음에 차다....등"으로 표현하듯
가치와 보람, 성취와 만족을 누리고자 하는 심리적지향(心理的志向)을 의미합니다.
"주의를 기울인다" 함은
"마음에 새기다 - 마음을 쓴다 - 마음을 먹는다....등"으로 표현되는
일련의 마음씀씀이 즉, 용심(用心)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는 속성(屬性)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삶이란 따지고 보면
순간순간 행해지는 "생각과 말과 행동 <사언행(思言行)>"의
총체적인 집적(集積)일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일련의 용심(用心)에서 비롯되고 작동되기 때문에
마음을 쓰는 일, 즉 관심만큼 크고 소중한 계기(契機)도 없습니다.
사실, 전혀 관심이 없으면 그 어느 것도 이루어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다"라는 말은
일찍이 삶을 포기한, 살아 있으되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인생패자(人生敗者)의 넋두리일 뿐입니다.
모든 종교의 키워드(key word)인 '사랑'도
자기 최선(自己最善)을 바친 강도높은 관심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이상(理想)의 실현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관심을 전혀 갖지 않는 이른바 '무관심(無關心)'이야말로
사랑을 가두고 유폐(幽閉)시키는 적소(謫所)입니다.
무관심의 토양에서는 사랑이 싹틀 수가 없고
무관심의 토질에서는 사랑이 뿌리내릴 수가 없으며
무관심의 대지에서는 사랑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고
무관심의 기후에서는 사랑이 꽃피울 수가 없으며
무관심의 풍토에서는 사랑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을
지향하는 보편종교인 가톨릭을 믿는
우리들 신앙인에게는
관심만큼 큰 사랑이 없습니다.
<2010년 재의 수요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