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о♣마음의 쉼터↘/詩人 녹암 진장춘

참회에 대한 묵상 / 녹암 진장춘

sunog 체칠리아 2010. 1. 23. 23:23

 

 

 

 참회에 대한 묵상 / 녹암 진장춘

 

 

 사람으로서 후회 없는 인생,

 한없는 인생을 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

 나는 그것이 원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는 원죄의 근원입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하느님께 대한 충성보다 배신을 택합니다.

 죄란 쾌락과 이기적 욕망에 빠져 죄를 지어

 악마와 어둠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첫 문입니다. (마태 4.17)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합니다.(루카 13.1)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루카 3.8)

 주님은 의인99인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하십니다.(루카15-7)

 회개는 고백성사를 통하여 사해지고 참회와 보속으로 정화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계의 세례를 주었지만 주님은 고백성사로 매번 사해주십니다

  

 참회는 악을 선택하여 내 영혼을 더럽히고

 하느님을 배신하고 하느님과 형제자매에게 입힌 상처를 아파해야 합니다.

 저희에게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의 죄를 하소서하고 매일 기도하듯이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한 만큼 용서받는다고 합니다.

 참회는 후회만으로 안 됩니다.

 용서를 청하고 다시 안하겠다는 다짐인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만으로 안 됩니다.  보속이 있어야 합니다.

 그 보속은 죄로 인한 손해를 갚아주고(보상),

 고통과 희생과 봉사의 길을 즐겨 걷는 것입니다.

 다른 영혼들의 죄악도 보속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나쁜 행동과 나태와 말이 많은 사람을 죄로 이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보속할 것을 간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수많은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은 우리가 진 죄를 속죄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참되게 참회하자면 결국 예수님이 지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예수님처럼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가끔 눈을 감으면 지난 날 과오와 남에게 준 상처와

 나쁜 표양으로 영혼을 잘못 이끈 일들이 나를 괴롭힙니다. 

 젊을 때 즐기던 쾌락과 세속적 일들을 즐거운 추억처럼 떠올립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인데 말입니다. 참회가 부족한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참회하지 않는 영혼들의 뻔뻔함이 주님의 마음을 무척 슬프게 합니다.

 나는 참회할 일이 없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님을 슬프게 하는 영혼들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의 세례(참회세례)를 받으신 뜻은

 인간에게 참회의 표양을 보이시기 위한 것입니다.

 참회할 죄가 없다고 말할 자격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회는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참회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참된 참회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진정한 참회는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성경에서 바오로 사도, 막달레나 마리아가 그 예입니다.

 으뜸 사도인 베드로도 평생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였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한 후 

 평생 십자가를 지고 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젊은 날 방탕과 죄를 참회하고 정진하여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삶의 방향을 바꾸기 전에 참된 참회가 있었습니다.

   

 예수마음의 자비여,  참회의 눈물을 주시고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예수마음의 사랑이여,  제 마음을 불사르소서.

http://blog.daum.net/jjc4012/15969470

 

 

참회기도(바룩서 1.15~22)

 

고백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

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그분을 거역하였으며,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걸으라는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날부터 이날까지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예사로 여겼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려고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던 날,

당신 종 모세를 통하여 경고하신 재앙과 저주가 오늘 이처럼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예언자들의 온갖 말씀을 거슬러,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주 우리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기도와 참회(유딧서 4.9~15)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열렬히 애원하였다.

그들 자신은 물론 처자, 가축, 동거인, 일꾼, 팔려 온 노예까지도 모두 베옷을 몸에 걸쳤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이들까지도 성전 앞에 엎드렸고

머리 위에 재를 뿌리며 주님 앞에 베옷을 펼쳐 깔고

제단 주위를 삼베로 둘렀다. 그리고는 마음을 합하여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자기 자녀들이 원수들의 밥이 되지 않게, 자기의 아내들이 포로로 끌려가지 않게,

조상이 물려준 도시들이 파멸되지 않게 그리고 성전이 이방인들의 손에 더럽혀지거나

치욕거리가 되거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시고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셨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전능하신 주님의 성전 앞에서 여러 날 단식을 하였다.

대사제 요야킴과 주님 앞에 서는 모든 사제들과 주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날마다 드리는 번제를 드렸으며 하느님과의 맹약의 표시로 백성들이 바치는 제물과 자유로 드리는 예물을 드렸다.

그들은 머릿수건 위에 재를 뿌리고 주님께 힘껏 부르짖으며

이스라엘의 모든 집안을 은총으로 보살펴 주시기를 애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