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의 삶 / 녹암 진장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삭막한 인공물과 숨 막히는 제도의 틀 속에 순치(馴致)되어 살아가며
계절은 온도로 느낄 뿐 자연에는 장님이 되어 감동과 창의력을 잃어버렸다.
자연 속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자연과 섭리에 대한 신비와 감사의 염(念)을 갖는다.
서양의 합리주의 교육을 받은 우리는 삶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경쟁에 늘 무게를 둔다.
인간만이 존엄하고 자유롭다는 이성만능(인간만능)이란 편견에 빠졌다.
개인은 절대적 가치이며 인간은 우주보다 더 존귀하다는 믿음은 정말 오만의 극치다.
과연 그럴까? 인간의 이기주의적 사고(이기주의와 합리주의는 맥을 같이 한다)의 결과일 뿐이다.
오늘 텃밭에 배추 모종을 하면서 생각한다.
며칠 만에 너무 커버린 호박을 딴다.
호박 넝쿨은 태양의 기와 물과 땅의 기운(地氣)을 모아 호박을 키운다.
겨자씨보다 작은 배추 씨가 자라서 한 아름의 배추가 된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고 전 우주가 동참하여 하는 신비로운 일이다.
쌀 한 톨도 땅과 태양과 비와 대기와 인간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만의 생산물이고 자연은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산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보다 오직 인간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자연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미래의 자손이 아니라 당장 자기들의 이익을 우선한다.
산책하는 산길에서 침묵 속에 자라고 변해가는 자연의 숨소리를 듣는다.
개울가 산책로에 핀 꽃들에게서 아름다운 자연의 순환을 본다.
식물은 침묵 속에서 사색하며 자라고 생노병사하며
신앙은 침묵의 기도 속에서 자라고
인간의 심성과 영혼도 자연의 침묵 속에서 자란다.
우주와 자연과 인간은 전체의 일부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는 자연의 한 부분임을 절감한다.
낙엽이 져 썩듯이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내가 자연을 먹고 에너지를 취하여 살았듯이
나도 죽어서 자연의 밥이 된다는 것이 자연의 순리(무위자연)이다.
노장사상의 무위자연은 자연과 인간을 일체로 보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장자가 아내가 죽었는데 장구를 치며 노래했다는 것도 생사가 별개가 아님을 안 것이다.
생노병사가 고통과 슬픈 일이 아니고 즐겁게 받아 들여야 하는 순리일 뿐이다.
옛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다 갔다.
자연은 간소하고 진실하게 살라고한다.
미국의 환경 작가 소로우(헨리 다이비드 1817~1862)가 월든 호수 가에서 2년을 혼자 살면서
진실한 것은 신과 자연 뿐이라고 했거니와 ([ 월든 호수])
나는 수지의 광교산자락에서 산 7년 동안 늘 혼자는 아니지만, 가끔 숲 속을 산책하며 무념에 잠기곤 한다.
내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참 삶임을 느낀다.
숲과 자연이 단순히 휴식과 사색의 장이 아니라 우리의 위선된 삶을 바꾸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0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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