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을 공부하는 까닭/녹암 진장춘
내가 금년에 한국과 동양의 철학과 한국천주교사를 공부하려고 한다고 하니
친구가 그러다가 가톨릭을 버릴까 걱정된다는 말을 했다.
철학이란 거개가 반신앙적이어서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동양철학을 다시 공부하는 까닭을 說해 보려고 한다.
해명이라기보다는 공부의 방향 설정을 위한 것이다.
내 신념의 0 순위는 가톨릭 신앙이다.
내가 동양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종국은 신앙과 바른 삶을 위함이다.
생각하고 묵상하기 위하여 영성적 방편도 필요하지만
생각의 學인 철학적 바탕이 필요하다.
신앙은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다.
이성에 근거하여 초이성인 믿음이 근거하며,
이성 위에 직관이 있고 직관 위에 계시가 있다.
계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직관과 이성이 필요하다.
인간은 하느님과 다른 존재다.
순수한 영적 존재이신 하느님을 알려고
우리는 오감을 통한 이성과 감성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나 본질은 오감으로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불교의 불립문자(不立文子-문자로 표현할 수 없다)나
도가의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非常道 - 말로서 표현된 도는 원래의 도가 아니다)는
직관으로 깨달은 도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신앙의 계시나 하느님의 실체도 역시 그러하다.
하느님 아버지라고 하고, 애인이라고도 하고, 주님(상전), 왕이라고도 한다.
출생(창조)과 자비의 상징이 어머니라고, 요즘 하느님은 어머니라고 하자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럼 하느님은 무엇인가? 그 어느 것인가? 이 모든 것을 합한 것인가?
이해하려고 인간적 언어로 말한 것일 뿐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영성적으로 신비 체험을 함으로 하느님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불완전한 언어를 통하지 않는다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것을 유비추리(類比推理)라고 한다.
유비추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이념에 가까운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유비추리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가 받아들인 서양의 가톨릭은 서양의 유비추리다.
유일신은 유대에게 야훼(스스로 존재하는 자), 서양엔 God(산크리스트어에 근거한다는 설-제사의 대상)
중국의 천주는 옥황상제에서 유래하고 한국의 하느님도 천주와 유사한 의미다.
개신교의 하나님은 유일신이란 의미다.
나라마다 그 의미가 다른 신의 개념으로 하느님을 이해한다.
만유공통의 신학도 필요하지만 우리 나름으로 이해한 믿음이 있기 마련이다.
중국에 인도 불교가 들어와 번역을 하면서 노자의 사상과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식 불교(이를 격의 불교)를 만들었다.
요즘 학자들이 범어불경을 바로 번역하는 경우 한자어 번역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금강경 번역본을 비교하여 보면서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공자의 유학은 철학이 아니라 실천적 가르침이다.
인격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이점 어느 사상보다 실천적, 이성적, 실용적이다.
공자는 도를 이야기했지만 도가 무엇이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형이상학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자였다.
子不語 怪力亂神(논어 술어 편-공자는 괴이함, 폭력, 문란,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신(神)에 대해서는 '존경하되 멀리한다면[敬而遠之]'라고 하였고
" 아직 삶도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 " “未知生, 焉知死?” (선진 12)라고 했다.
그런데 신유학(주자학)은 유교가 형이상학이 없어 불교에 밀리자
불교의 형이상학을 차용하여 만든 이기(理氣)의 학이다. " 신유학은 공자가 가르친 원유학이 아니다.
조선에 도입된 주자학은 이퇴계와 율곡에서 꽃을 피웠고 선비정신에 기여한 바도 크지만 폐단도 컸다.
사색당파의 원인 제공을 했고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워 대중화는 실패하였다.
이제 한국 가톨릭의 토착화는 어떻게 정리하여야 하는가?
이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한국학과 동양학을 통한 기독교의 이해는 어떠해야 하는가?
서양 옷을 입고 버터 냄새가 나는 서양 기독교를 금과옥조로 할 것이 아니라
김치 냄새나는 기독교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교리를 고치거나 종교개혁을 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원 헥톨 신부의 [한국 신학]은 정약종의 주교요지를 분석하여 한국 독자의 신학을 추리하여 박사논문을 받았다.
이미 정약종은 주교요지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교리서를 번역하면서 우리식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격의불교, 격의유학(?)처럼 격의(格義) 천주교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한국천주교회사와 성경을 함께 공부하는 것도
동양철학 공부와 연관하여 나의 관을 변화시킬지 모른다.
불교를 전공하는 신부나, 유학을 깊게 공부하는 신부도 있다.
동양 철학을 선호하는 이유가 또 있다.
한국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최근 중국의 정체성이란 책을 보면서 중국과 한국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중국화와 미국화 된 한국의 모습에서 한국적인 것,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강한 의문을 느꼈다.
나는 한국학에 대한 책도 몇 년 간 보았다. 유교, 불교에 관한 책도 보았다.
그러나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유불선이 중국의 것을 가져와 한국화 된 모습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의식주의 상당 부분이 고유하고, 고유한 언어와 문자, 단일 혈통,
같은 땅과 같은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이 존재한다.
한국고유사상을 샤마니즘으로 보아 형해(形骸)화한 한국학이 아닌 무엇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동양인인 나의 의식 구조의 DNA와 동양철학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 같다.
이성적이고 귀납적인 서양 철학보다는 연역적이고 직관과 깨달음에 바탕을 둔 동양철학이 나의 DNA와 일치한다.
서양철학은 분석적 사변적이고 합리적이나 머리로 쓴 것이다. 해부학과 같다.
작년에는 현대철학을 겉핣기로 보며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지식은 얻었지만 삶의 지혜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존경할만 한 철인도 감동할만한 경구도 얻지 못했다.
가슴(心)과 경험(行)이 빠져 감동을 주지 못한다.
서양 철학자들은 대개가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한다.
동양의 철인은 마음과 경험(수행)을 통하여 언행일치의 이론을 주장하는 당대 인격적인 지도자이다.
동양 철학은 명상(心)과 경험(수행)으로 얻어진 직관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보다는
공자의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夕道 夕死可矣)"가 마음에 와 닿는다.
동양 철학은 자연에 근거하면서 자연보다는 인간의 인격(행동)과 관련이 깊다.
서양 철학은 지식은 주지만 지혜는 별로 주지 못한다.
서양 문명은 자연을 정복하고 착취하나 동양문명은 친자연적이다. 등산(登山)과 입산(入山)의 차이다.
유목문화가 원류인 서양 사상은 종말론적이나 농경문화가 원류인 동양 사상은 윤회적이다.
우리는 주기적인 60갑자와 음력(설, 한가위)에 익숙해 있다.
나이 들어서 읽은 논어나 노자, 장자가 예전과 다른 깨달음(?)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이는 삶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이해한 때문이다.
문자에서 삶으로 이해하는 인생과 신앙의 본질에 접근하고 싶다.
이처럼 사상은 시공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적용된다.
이것이 토착화요, 인격화요, 내면화이다.
불교가 버리라는 알음알이(분별지)나 금강경의 사상(四相), 노자가 버리라는 배움(편견)은 같은 것으로
문명과 이기주의가 키운 편견이나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창세기에 "선악과를 먹으면 지혜(선과 악)를 배운다.(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고 했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3장 22절) 라고 하셨다.
노자가 주장하는 선과 악을 모르는 자연 상태(不仁, 無爲)는 창세기와 너무 닮았다.
이성 중심이 낳은 서양 사상의 결과인 합리주의와 과학문명의 이익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합리주의와 과학이 못하는 것을 동양 사상이 제시해 줄 수가 있을 것이다.
동양 철학이 더욱 깨달음을 주지만 서양 철학을 비판하면서
다시 현학(衒學)적 사변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잡다한 이유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려고 한다.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삶의 본질과 신앙의 본질을 좀 더 알기 위함이다.
동양 사상이 서양의 옷을 입은 서구 기독교와 좀 다르다고 모두 이단은 아니다.그 바탕과 본질을 살펴야 할 것이다.
동양인 자연과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살면서 토한 절규를 외면하고 어찌 한국인(동양인)일 수 있는가?
2008-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