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일(消日)과 석음(惜陰) /녹암 진장춘
소일(消日)은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냄을 뜻한다.
지루한 세월을 태워 꺼버리는(꺼질 消) 일처럼 삶이 지루하다는 것이 된다.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보람되게 쓸 것을 계획하고 아까워해야 삶이 즐겁다.
이를 선인들은 석음(惜陰-세월이 감을 아까워함)이라 하였다.
다산은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다.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이덕무는 " 눈도 밝고 두 손도 멀쩡하면서 게으름 부리기를 즐기는 자는
툭하면 소일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말한다.
소일(消日) 즉 날을 보낸다는 두 글자는 석음(惜陰),
즉 촌음(寸陰)을 아낀다는 말과 서로 반대가 되니 크게 상서롭지 못한 말이다.
내가 비록 부족하지만 일찍이 이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 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석음, 석일(惜日)이란 말은 잊혀지고 소일이 자주 쓰는 말이 되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은 석음보다 소일을 일삼고 있다는 말이다.
쓸데 없는 오락이나 환락에 빠져 젊음을 태우는 사람도 있고
퇴직 후 공원이나 경로당에서 소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퇴직 후 3년은 퇴직 전 30년과 같다’는 찰스 램의 경구가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나는 퇴직 후 정말 그 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읽고 봉사도 하고 산에도 가보고
내가 하고 싶던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노후는 지루한 황혼이 아니라 아름다운 새벽이 되어야 한다.
돈 버는 일과 경쟁에서 해방되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황금기가 아닌가?
일에 얽매어 살 때 잠시 휴가가 얼마나 그리웠고, 책 한 권 읽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봉사나 기도 같은 것은 할 시간이 없다고 미루지 않았던가?
정말 필요한 것을 못하고 미루었는데 이제 그것을 할 시간이 주어졌으니
노년은 하늘이 준 축복이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시간을 소일하지 말고 석일(惜日)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할 일을 들어 보면
기도하는 일- 기도는 하느님에 대한 예절이며 영혼의 약이다.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다.
봉사하는 일- 나만을 위한 일에서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시간과
돈을 나누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언젠가 젊은 분이 아이를 데리고 봉사 온 것을 보기 부러웠다. 자녀 인성교육은 제대로 된다고 한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 평생 사랑하는 것을 배우며 산다. 사랑은 인생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하는 것- 이제 아내가 하던 집안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 되었다. 그동안 소홀히 한
아내를 사랑하는 일은 퇴직 후에 할 중요한 일이다. 아내 맘에 들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독서하고 공부하는 일- 늘 배워야 늙지 않고 발전한다.
취미를 즐기고 건강을 챙기는 일- 삶은 효율만 생각하면 녹이 난다. 윤활유가 필요하다.
텃밭도 가꾸고 등산도 하고, 글도 쓰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즐기는 것은 삶의 즐거움이다.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술 한 잔 먹는 일- 그러나 지나치거나 과음을 하면 過는 不如不急이다.
이런 일들에 우선순위와 시간의 양을 잘 배정하여야 한다.
우선순위와 시간배정의 원칙은 단순한 즐거움을 주는 일보다는 보람된 일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공자님은 "아는 것은 좋아함만 못하고, 좋아함은 즐김만 못하다."라고 했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論語, 雍也)
일을 하되 이왕이면 유불리 따지지 말고 삼매경에 빠지라는 것이다.
보람된 일들을 즐겨서 하는 것이 석음이며 바른 삶의 철학이다.
그러자면 준비하고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어진 작은 수입(시간)으로 규모 있게 살자면 요긴한 것을 먼저 사는
구매 계획(삶의 계획, 금년의 계획, 하루 계획)을 세우고
충동구매(소일)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을 쓰다가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다. 꽤 많은 눈이 왔다.
일일일선( 一日一善)의 기회가 생겼다.
밖에 나가 경비 아저씨들과 눈 치우는 일을 했다.
특히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을 깨끗이 치웠다.
장갑을 끼었는데 손이 곱고 귀가 시리다. 어릴 때에 손이 곱아 호호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영하 11도란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땀이 나고 손도 뜨거워졌다.
일석이조, 운동도 하고 눈 치우는 일도 했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이제 설이 돌아 온다.
아내와 설 준비도 하고 은사님이나 친지에게 전화라도 해야 겠다.
오늘 아침은 석음을 한 것일까?
2009년 12월 24일 (음력 12월 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