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о♣마음의 쉼터↘/詩人 녹암 진장춘

붉은 꽃씨의 추억 / 녹암 진장춘

sunog 체칠리아 2009. 11. 13. 23:09

 

 

 

 

 

 붉은 꽃씨의 추억 / 녹암 진장춘

 

 

 

 성복천을 거닐다 만추의 추위에 못이겨 추하게 시들어 죽어버린 풀과 꽃대 사이에 피어나는 작은 꽃들을 보았다.

 이들을 하나씩 카메라에 담다가 문뜩 언젠가 본 눈에 익은 꽃 하나를 발견했다.

 다섯 개의 빨간 꽃잎을 피우는 작은 풀꽃,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49년 전 까마득한 추억이 떠올랐다.

 1960년 강원도 OO 초교에서 교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생전 처음 상경을 하여 서울 구경을 하고 꽃가게에서 꽃씨 한 봉지를 사왔다.

 화분에 심어 하숙집 앞뜰에 두었더니 싹이 나와 자라서 가녀린 줄기와 가여워 보이는 작은 꽃을 피웠다.

 나는 물을 주고 정성껏 키웠다.

 내가 하숙한 집은 공소회장댁이라 공소에서 

 만과(저녁기도-그땐 만과를 공동으로 바쳤다)를 바치려 왔던 교우들이 잘 모이는 곳이었다.

 교우 총각 처녀들이 대청마루에 모여서 화제의 꽃을 피웠다.

 나도 함께 끼어서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때만 해도 초등교사는 농촌마을에서 최고의 엘리트였다.

 내 나이  21세였지만 문학과 철학을 합네하고 꽤 시건방을 떨었던 것 같다.  

 그들은 내가 키운 꽃을 보고 꽃 생김새가 진선생님과 같다면서 진선생꽃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하숙집에는 교우로 1년 후배인 여선생님이 하숙을 했고

 또, 내 나이 또래의 수녀지망생 둘이 거기 중학교 수학을 위해 회장댁에 유숙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수녀 지망생들에게 밤에 가끔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거기는  아름다운 추억이 쌓인 곳이다.

 아름다운 산천을 구경하며 로맨스도 있었고 아픈 추억도 있었다.

 거기 있다가 다음 해 대학으로  진학했다.

 떠나온 후  41년 만인,  2002년 9월에 그 곳을 찾았다.

 제법 붐비던 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 폐가가 즐비했고  

 번창하던  600여명의 학생이 다니던 초교는 학생이 10분의 1도 안 되었다.

 주변 자연도 많이 망가졌다.

 그 초교에서 1990대 근무하던 내 친구가 그 곳 어떤 사람이 나의 이름을 기억하더라고 했다.

 그 땐 정성을 쏟아 가르쳤다. 그 학생들이 벌써 60세가 되었다.

 공소도 있었고 회장집도 있었지만 그때 회장은 서울로 가서 살다가 암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날의 꽃을 우연히 보면서 한동안 쓸쓸한 추억에 사로잡혔다.

 그때 쓴 시 한수가 있다.

 

첨부이미지

 

 

 

  동산에 달 오르니

 


동산 위에 달님 돋고 충천에 별님 떴네.

이 숲속 자리하고  먼 뫼더러 잔을 주며

억만 시름 나래 달아 달빛 속에 전송하네.


벗님네 옆에 두고 만수국 피었으니

이 잔 위에 달 오르면 마셔도 좋으련만

벗님네야 이잔 들고 인생대계 세워보세.

    

 1960년 8.7(음력 6월 보름)

 

 

http://blog.daum.net/jjc4012/15969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