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씨의 추억 / 녹암 진장춘
성복천을 거닐다 만추의 추위에 못이겨 추하게 시들어 죽어버린 풀과 꽃대 사이에 피어나는 작은 꽃들을 보았다.
이들을 하나씩 카메라에 담다가 문뜩 언젠가 본 눈에 익은 꽃 하나를 발견했다.
다섯 개의 빨간 꽃잎을 피우는 작은 풀꽃,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49년 전 까마득한 추억이 떠올랐다.
1960년 강원도 OO 초교에서 교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생전 처음 상경을 하여 서울 구경을 하고 꽃가게에서 꽃씨 한 봉지를 사왔다.
화분에 심어 하숙집 앞뜰에 두었더니 싹이 나와 자라서 가녀린 줄기와 가여워 보이는 작은 꽃을 피웠다.
나는 물을 주고 정성껏 키웠다.
내가 하숙한 집은 공소회장댁이라 공소에서
만과(저녁기도-그땐 만과를 공동으로 바쳤다)를 바치려 왔던 교우들이 잘 모이는 곳이었다.
교우 총각 처녀들이 대청마루에 모여서 화제의 꽃을 피웠다.
나도 함께 끼어서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때만 해도 초등교사는 농촌마을에서 최고의 엘리트였다.
내 나이 21세였지만 문학과 철학을 합네하고 꽤 시건방을 떨었던 것 같다.
그들은 내가 키운 꽃을 보고 꽃 생김새가 진선생님과 같다면서 진선생꽃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하숙집에는 교우로 1년 후배인 여선생님이 하숙을 했고
또, 내 나이 또래의 수녀지망생 둘이 거기 중학교 수학을 위해 회장댁에 유숙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수녀 지망생들에게 밤에 가끔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거기는 아름다운 추억이 쌓인 곳이다.
아름다운 산천을 구경하며 로맨스도 있었고 아픈 추억도 있었다.
거기 있다가 다음 해 대학으로 진학했다.
떠나온 후 41년 만인, 2002년 9월에 그 곳을 찾았다.
제법 붐비던 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 폐가가 즐비했고
번창하던 600여명의 학생이 다니던 초교는 학생이 10분의 1도 안 되었다.
주변 자연도 많이 망가졌다.
그 초교에서 1990대 근무하던 내 친구가 그 곳 어떤 사람이 나의 이름을 기억하더라고 했다.
그 땐 정성을 쏟아 가르쳤다. 그 학생들이 벌써 60세가 되었다.
공소도 있었고 회장집도 있었지만 그때 회장은 서울로 가서 살다가 암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날의 꽃을 우연히 보면서 한동안 쓸쓸한 추억에 사로잡혔다.
그때 쓴 시 한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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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 달 오르니
동산 위에 달님 돋고 충천에 별님 떴네.
이 숲속 자리하고 먼 뫼더러 잔을 주며
억만 시름 나래 달아 달빛 속에 전송하네.
벗님네 옆에 두고 만수국 피었으니
이 잔 위에 달 오르면 마셔도 좋으련만
벗님네야 이잔 들고 인생대계 세워보세.
1960년 8.7(음력 6월 보름)
http://blog.daum.net/jjc4012/15969323
',·´″```°³о♣마음의 쉼터↘ > 詩人 녹암 진장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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